“벨라루스 여자”라는 검색어 뒤에는 대개 외모 이야기가 따라붙어요. 실제로 2016년 전자신문은 벨라루스를 미인들의 나라로 소개했고, 나무위키에는 벨라루스 여성 모델 분류가 따로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같은 나라의 여성들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독재에 맞서는 광장의 얼굴로, 세계 1위 테니스 선수로도 이름을 알렸어요. 외모라는 하나의 렌즈를 걷어내고 나면 훨씬 다양한 이야기가 보여요.
외모로 소비되는 이미지와 그 한계
한국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벨라루스 여성은 흰 피부와 큰 키로 자주 소개돼요. 전자신문의 2016년 기사가 대표적이고, 검색하면 비슷한 제목의 글이 수없이 나와요. 이런 이미지는 여행이나 소개팅 플랫폼, 국제결혼 광고 문맥에서 반복 재생산돼 왔어요.
문제는 이 이미지가 벨라루스 여성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나무위키의 모델 분류에 오른 이름들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직업인들이고, 그 사진이 나라 전체 여성의 대표성을 갖지는 않아요. 특정 국가 여성을 한 가지 잣대로 묶는 글이 검색 상위를 차지하다 보니, 정작 그 나라 여성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찾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이 글은 외모 이야기를 접어두고,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람들과 사건을 따라가요. 노벨상 작가의 인터뷰집, 2020년 시위, 스포츠 무대 그리고 한국에서 소개된 한 벨라루스 여성의 인터뷰 순으로 봐요.
알렉시예비치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벨라루스 여성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꼽히는 이름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예요.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로, 취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엮는 방식의 논픽션을 써 왔어요. 수상 이후 한국에서도 작품이 널리 번역되고 읽혔어요.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소련 여성들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직접 듣고 엮은 책이에요. 저격수, 간호병, 조종사로 싸운 여성들이 승리의 공식 기록에서는 지워졌던 기억을 털어놓는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남성 중심의 전쟁사가 담지 못한 세부, 예컨대 피 묻은 군복을 세탁하던 순간이나 전쟁 후 사회로 돌아와서 겪은 냉대가 증언으로 남아 있어요.
이 작품이 벨라루스 여자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벨라루스 여성들이 공식 역사의 바깥에 있던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 상징이기 때문이에요. 이후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야권 활동에도 이름을 올렸고, 자국 정부와는 긴장 관계에 있었어요.
2020년 대선과 광장의 여성들
2020년 8월 벨라루스 대선은 1994년부터 집권해 온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재선 결과에 대한 부정선거 논란으로 전국적인 시위로 번졌어요. 이때 시위의 얼굴이 된 사람들이 여성이었어요. 후보로 나섰던 스비아틀라나 치하놉스카야, 야권 캠프의 마리야 콜레스니코바, 베로니카 체프칼로 세 사람이 함께 서서 두 손으로 하트와 주먹과 승리 표시를 만든 장면이 널리 알려졌어요.
시위 현장에서는 여성들이 흰색과 붉은색, 흰색이 섞인 옷을 입고 꽃을 들고 줄지어 서는 방식이 눈에 띄었어요. 무기 없이 꽃으로 진압대 앞에 서는 이미지는 시사저널이 「꽃과 외교로 26년 독재에 맞서는 벨라루스 여성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기도 했어요. 26년이라는 숫자는 루카셴코 집권 기간을 가리켜요.
콜레스니코바는 2020년 9월 강제 출국 위기에 처하자 국경에서 여권을 찢어 추방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후 그는 2021년 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았어요. 이 사건은 벨라루스 여성들의 저항이 상징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형사 처벌과 망명, 가족 분리라는 대가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줘요.
- 치하놉스카야: 남편이 출마하려다 체포되자 대신 후보로 나섰던 인물로, 이후 해외에서 벨라루스 야권을 대표하는 역할을 이어왔어요.
- 콜레스니코바: 음악가 출신 야권 인사로, 국경에서 여권을 찢고 추방을 거부한 장면으로 기억돼요.
- 체프칼로: 남편이 후보 등록을 거부당한 뒤 캠프에 합류했어요.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국외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스포츠 무대의 벨라루스 여성, 사발렌카
스포츠에서는 테니스 선수 아리나 사발렌카가 가장 유명해요. 2023년과 2024년 호주 오픈 우승, 2024년 US 오픈 우승 기록을 갖고 있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선수예요. 강한 서브와 공격적인 스트로크로 유명한 파워 테니스의 상징이에요.
다만 벨라루스 국적 선수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지지한 정황 때문에 국제 대회에서 중립 선수 자격으로 출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회 화면에서 국기 없이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요. 국가 정치와 선수 개인의 경력이 서로 얽혀 있다는 점에서 벨라루스 여성의 이야기는 스포츠 코트 위에서도 이어져요.
이 밖에 국제 대회 축구와 육상, 리듬체조에서도 벨라루스 여성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 왔어요. 한국 여자 축구 팬이라면 피파 랭킹 화면에서 벨라루스 여자 대표팀을 종종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읽히는 벨라루스 여성 인터뷰
피렌체의 식탁에는 「윤영호가 채집한 목소리」라는 연재 아래 벨라루스 32세 여성의 이야기가 실렸어요. 제목은 「어디서도 반기지 않는 벨라루스 32세 여자의 경우」이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 수 없어 나라를 떠나야 했던 경험을 다뤄요. 정치적 이유로 고향에서 살기 어려워진 사람이 이주한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을 담아요.
유튜브에서는 한국계 남성과 벨라루스 여성의 이야기, 한국에 정착한 모국 여성을 다룬 영상도 확인돼요. 벨라루스와 한국 사이에는 고려인 이주 역사가 있어서, 벨라루스에도 한인 동포 공동체가 있어요. 이런 콘텐츠는 벨라루스 여성을 이국적 이미지가 아닌 이주민, 정착민, 가족 구성원으로 보여줘요.
결국 “벨라루스 여자 이야기”를 제대로 찾으려면 외모가 아닌 기록을 쫓는 게 맞아요. 알렉시예비치의 책을 읽고, 2020년 시위의 여성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확인하고, 이주 여성들의 인터뷰를 함께 읽으면 하나의 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졌는지 알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