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패삼겹살 하면 백종원 대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 그가 방송에서 이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2026년 7월 법원이 이와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대패삼겹살의 원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어요. 이번 글에서는 백종원 대표와 대패삼겹살의 인연, 법원 판결 내용, 그리고 실제 대패삼겹살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지역까지 정리해봤어요.
원조쌈밥집에서 시작된 대패삼겹살
백종원 대표가 운영해온 ‘백종원의 원조쌈밥집’은 1993년에 문을 열었는데, 이곳에서 대패삼겹살이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은 계기가 흥미로워요. 더본코리아 측 설명에 따르면 당시 비용을 절감하려고 정육 슬라이서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햄 슬라이서를 구매했는데, 이 기계로 삼겹살을 얇게 썰다 보니 고기가 돌돌 말리며 나오는 모양이 마치 목재를 대패로 깎아낸 대팻밥처럼 보였다는 거예요. 여기서 ‘대패삼겹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는 게 백종원 대표 측이 오랫동안 밝혀온 스토리예요.
이 에피소드는 여러 방송에서 백종원 대표가 직접 소개하면서 대중에게 대패삼겹살의 이름을 만든 사람으로 각인되는 계기가 됐어요.
1996년 상표 출원, 1998년 등록
백종원 대표 측은 대패삼겹살이라는 명칭을 1996년에 상표로 출원했고, 1998년 정식으로 상표 등록까지 마쳤어요. 이 상표권 등록 이력은 그동안 백종원 대표가 대패삼겹살의 원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어 왔어요. 실제로 방송에서도 이 상표 등록 사실을 언급하며 이름의 원조가 본인임을 강조해온 바 있어요.
2026년 법원 판결, “원조 아니다”
하지만 2026년 7월 법원은 대패삼겹살이 백종원 대표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음식이라고 판단했어요. YTN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대패삼겹살이 1980년대부터 부산 지역에서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얇게 썬 삼겹살을 만드는 데 특별한 제조 공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어요. 단순히 고기 슬라이서로 얇게 썰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말리는 형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특정인이 독창적으로 개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예요.
이 판결로 백종원 대표가 그동안 방송에서 밝혀온 ‘내가 이름을 지었다’는 스토리와 실제 음식의 기원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셈이에요.
마산 1975년 기원설
법원 판단 과정에서 나온 증언 중에는 1976년부터 마산에서 대패삼겹살 식당을 운영해온 업주의 이야기도 포함됐어요. 이 증언에 따르면 일본에서 부산으로 들어온 육류 슬라이서 기계가 계기가 되어, 1975년 마산 창동 지역에서 대패삼겹살을 파는 첫 식당이 생겨났다는 주장이 나왔어요. 일본식 슬라이서로 고기를 얇게 썰던 방식이 자연스럽게 부산·경남 지역으로 퍼지면서 대패삼겹살이라는 음식 형태가 먼저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에요.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백종원 대표의 원조쌈밥집이 문을 연 1993년보다 약 18년 앞서 이미 대패삼겹살이 존재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법원이 원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중요한 근거가 된 것으로 보여요.
대패삼겹살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
재미있는 점은 ‘대패’라는 표현 자체가 목공 도구인 대패로 나무를 얇게 깎아낼 때 나오는 대팻밥의 모양에서 비롯된 비유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는 거예요. 즉 얇게 말린 고기 모양을 대팻밥에 빗댄 작명 아이디어 자체는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떠올랐을 가능성이 있어요.
결국 이번 논란은 ‘대패삼겹살’이라는 조리 방식과 이름을 백종원 대표가 처음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이미 존재하던 음식 문화를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로 볼 수 있어요. 상표권 등록은 명칭에 대한 법적 권리이지, 음식 자체의 최초 발명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번 판결에서 드러난 부분이에요.
백종원 대표의 대패삼겹살은 1993년 원조쌈밥집에서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2026년 법원 판결로 실제 음식의 기원은 1970~80년대 부산·마산 지역에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어요. 방송을 통해 대중화시킨 공로와 최초 발명자라는 주장은 별개의 문제로 구분해서 봐야 할 것 같아요.